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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소식

<왔다! 장보리, 마지막회> '왔다!장보리' 를 보내며!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그 시간을 반영해주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낡은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말 그대로 낡은 것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우리가 이탈리의 어느 고성을 방문한다고 하면 그 낡은 고성은 우리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으로 전율하게도 된다. 영화 '쥬라기공원' 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전율했던가? 이미 멸종되어 화석속에서나 발견되는 공룡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정말 새로운 감동이었다. 시간이 지나 오래되면 될 수록 다시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던 시간 속에 있었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된다. 문제는 시간속에 단지 화석속으로 머물지 않을 때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막장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그저 사라져 가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무언가가 된다. 단지 다시 찾지 않기에 사라져 가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jangbori/

 

지난 일요일(2014.10.12) 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왔다! 장보리'도 시간속으로 사라져 가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국민드라마로 30대 후반 40%초반까지 시청율을 기록한 드라마라고 해도 별 볼일 없는 드라마로 시간속에 잊혀가게 될 것이다. 슬픈 운명이다. 사실 슬프지 않는 운명이 어디에 있을까 마는!

 

그렇다면 드라마가 시대를 조금이라도 반영한다면 우리는 '왔다!장보리'를 통해 어떻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을을까? 지금 사는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어떤 상징이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그냥 보내야할 슬픈 운명의 드라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의가 아닐까한다. 그래도 2014년의 어느 한 때 주말마다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게(?) 본 드라마이지 않는가?

 

미혼모의 문제

'왔다! 장보리' 에서 빼놓 수 없는 유의미한 주제는 미혼모의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미혼모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접하는 입양아들의 소식들인데,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솔직히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 우리가 한 아이의 운명을 두고 이렇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할 수만 있다면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을까?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의 무게를 우리는 너무 가볍게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고귀한 한 아이의 존재를 쉽게 버리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아니고 무엇일까?

 

선과 악의 문제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존재해 온 것일 테지만 지금, 이곳 우리사회의 현실로 그 범위를 좁혀보면 이 선과 악의 문제는 정말이지 큰 의미가 있다. 성공을 위해 주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연민정은 우리가 손가락질 하면서도 결국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민정을 보며 분노하면서도 현실의 악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심지어는 공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상위 1%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재화의 아버지이며 보리의 시아버님인 동후(한지희분)의 모습이야 말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존경할 만한 부자의 상이 아닐까 싶다. 대단히 전향적인 인물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여동생인 정란(우희진분)과 전직 조폭인 내천(최대철분)과의 결혼을 허락해주는 것은 학력에 대한 편견이나,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비단이를 친손녀처럼 귀여워해주는 것도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있다. 우리사회와 가진 사람들의 인식이 이렇게 유연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한 때 우리에게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던 드라마 '왔다!장보리' 를 보내며 급하게나마 몇가지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