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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소식

기러기 아빠가 된 이대근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머물러 있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 버린다. 이런 흐름을 실감나는 하는 것들이 우리의 도처에 늘려있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변화한 모습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순응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발버둥쳐 받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주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간 사진속 모습들이나 추억속의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고왔던 부모님들의 늙어버린 모습에서, 친구의 모습에서 정작 자신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들도 그런 존재들 중에 하나이다. 특히 영화나 TV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왔던 연예인들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싶다. 그들의 모습을 영상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이대근을 기억하실 것이다.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가 31년 동안이나 기러기아빠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개인사이고 개인의 속사정을 시시콜콜 캐묻는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니 말이다. 31년이란 세월은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시간이다. 그 기간을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 왔다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물론 비록 떨어져 있지만 자주 만나기도 할 것이고 인터넷의 발달로 자주 연락을 할 것이다. 300회나 워싱턴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것만큼이야 할까?



이대근의 이런 속사정을 접하니 외롭게 죽어간 김희라나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김추련이 떠오른다. 정말 세월이 덧없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며 생활하던 한 연예인의 쓸쓸한 죽음과 자살 소식은 개인의 사생활로 돌리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다. 죽은 김희라나 김추련만이 알 것이다. 대중의 인기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시간과는 달리 쓸쓸하게 외롭게 살다 죽음에 직면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변해 간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점점 변해서 늙고 늙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물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와는 달리 '쓸쓸한 몰락' 은 자연스럽지가 못해 보인다. 자연스러운 삶에 이물질이 끼어있는 느낌이다. 왜 삶이 그렇게 되어버렸는가는 개인사이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대근이 기러기 아빠로 31년간 홀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쓸쓸한 몰락은 아니지만 31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아온 것은 자연스럽지가 않아 보인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면서 살아왔듯이 연기자의 명예를 간직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모든 연예인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인기를 누렸던 만큼 행복해 지면 좋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평범함 속에서도 평온하고 품위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함께 울고 웃었던 연예인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좋겠다.



이와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자연에 순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연예인들의 지나친 성형이다. 성형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발버둥 같은 제스처들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되면 참 짠하게 된다. 흐르는 시간에 그렇게 악착같이 저항하기 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게 자신을 풀어 놓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배 연예인들의 '쓸쓸한 퇴장'(?) 을 보면서 자신의 '늙음' 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인기라는 것도 덧없지 않는가? 혹 노년에 성형 후유증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기까지 할까. 인기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