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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사랑을 믿어요

사랑을 믿어요, 권기창의 변화가 의미있는 이유?


몇일 전 뉴스(2011.6.4)에 인산인해를 이룬 입시설명회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입시설명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 부모들이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광적인 입시설명회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왜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부모들이 이처럼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걸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입시설명회 열풍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믿어요>의 권기창(권해효 분)은 유능한 학원 강사였다. 어찌보면 사교육의 주범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부에 권기창은 학원에서 카리스마있는 강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입시 경쟁의 한 가운데서 그 열풍을 온몸으로 느꼈던 인물이다. 이런 살벌한 경쟁의 한 가운데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와 더불어 감정이 메말라버린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 된 듯했다. 이러한 학원에서의 성격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아내 김영희와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그에게 아내 김영희와 자녀들은 마치 강압적인 명령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그의 경제적인 능력과도 무관치는 않았다.  


이미지출처: kbs 드라마

그런데 어느 순간 학원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내 영희가 방송작가 공모에 당선이 되면서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김영희가 방송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는 반면, 권기창은 우여곡절 끝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권기창은 경제적인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도 잃고 만다. 이러한 변화의 초기에는 권기창의 몰락이 고소했고, 언제나 권기창에게 눌려살던 김영희의 드라마작가로의 신분상승(?)과 경제적 능력에 시원함을 느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역전된 위치가 감정적인 만족을 주는 것도 잠시, 바뀐 위치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우리의 가대와는 너무 달랐다. 점차 인간적으로 되어가는 권기창과는 달리 드라마 작가가 된 김영희는 자녀와 남편을 방기하면서 술에 빠져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작가로서 드라마대본을 쓴다는 사실을 그녀 행위를 합리화하는 절대적인(?) 근거로 항변하였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이 김영희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꽤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희화화되고 과장된 인물이라 유쾌하게 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상하게 변화한 김영희와 달리 경제적으로 몰락한 권기창은 그 몰락이 그 자신의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드라마상에서 권기창이 이렇게 달리지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성찰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권기창의 갑작스런 변화가 그 개연성을 결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연성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권기창이나 김영희는 애초부터 개연성을 초월하는 코믹적인 요소가 강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경제력을 상실하고 어쩔 수없이 전업주부가 된 권기창은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면서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이전 아버지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아이들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좋아한다. 권기창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으면서 자녀들과 관계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수영도 하고, 강가에서 감자도 구워먹으면서 자녀교육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요만 하던 가부장적인 학원강사의 모습을 재현하던 권기창이 이제는 친구처럼 자녀들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학원이란 공간에서 입시문제 풀이를 하던 학원강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권기창의 변화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입시설명회에 모인 부모들의 모습과 권기창의 모습이 자꾸만 대비되면서 교육의 의미와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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