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 권모술수로 이룬 대의는 정의로울 수 있는가?


<프레지던트>를 보고 있노라면 정치(政治)가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그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 권모술수를 행해야만 하는 자기모순의 논리를 가진 괴물로 느껴진다. 과연 정치는 이런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세상은 권력을 가진 적당하게 타락한 정치인들이 대중들을 지배하는 공간이어야만 할까? 정치는 그런 도구이기만 할까?


<프레지던트>를 보면서 정치와 정치인의 이런 한계성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정말 정치와 정치인은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권력을 추구하려는 대의는 지고지순의 이상을 표방하지만 이 대의를 위한 현실적인 수단은 권모술수라는 이 모순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이란 말일까? <프레지던트>는 이런 모순적인 정치와 정치인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다. 아니 더 나아가 당연하다는 태도이다. 비판적인 사고를 애당초 막고 있는 듯하다. 이런 판단은 장일준의 행태를 정치 현실이란 한계속에서 정당화시기려는 의도 때문이다.


http://www.bizplace.co.kr/biz_html/content/daum_content_view.html?seq_no=37486



필자가 보건데 장일준은 이미 그 자신 속에 비극적인 파멸을 잉태하고 있는 존재이다. 장일준이 이런 모든 결점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후반부에 반드시 대의를 이루는 내용의 전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연 장일준이 그래 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가장 먼저 재벌가의 딸인 아내를 처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장일준의 존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을 추구하는 장일준 행태의 일련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대의의 성취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물에 술 탄 듯 허허실실이다. 이걸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정치 현실을 보여주어서 무얼하려고?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인가? 장일준은 박일섭보다는 상대적으로 깨끗하단 걸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이렇듯 <프레지던트>는 대중들에게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의 현실적인 한계를 정당화하는 듯해 불편하다. 대중들까지도 이러한 한계 속에 가두어놓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치란게 당연히 그런 것이고 정치인들이 당연히 저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프레임에 대중을 가두고 있다. 장일준이 충청도 경선에서 청암의 지지자들을 말 한마디에 돌려 놓듯이 주인공 장일준의 한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게 만들게 하고 있다. 도대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정치현실을 보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다. 그래야 정치가 조금이라도 정화(?)되기 때문이다. <프레지던트>는 객관적임을 가장해서 장일준에 대한 주관적인 시각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충청도 시민들이 그랬듯이 장일준에게 공감을 하라는 말인가?


인식의 틀을 좀 옮기는 것은 어떤가? 권모술수가 필요악으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 할 유물이라는 인식으로 말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다른 국가의 정치인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어떤가? 그랬을 때 대중은 비교상대가 없는 판단에 그냥 내몰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장일준은 어쩔 수 없는 인물이 아니라 정말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까?